서 론
안면신경 마비는 일측의 안면근육이 마비되는 질환으로 가장 흔한 원인은 벨 마비(Bell’s palsy)이다. 이외에도 두부 외상, 이성 대상포진, 종양, 감염에 의해 유발된다.1)
벨 마비는 급성, 원인 불명성, 일측성, 말초성 마비로 다른 뇌신경 마비가 동반되지 않은 단독 마비로 이해되어 왔으나, 벨 마비를 야기하는 주된 원인으로 바이러스 감염이 제시되면서 인접한 뇌신경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2) 이 경우, 삼차신경 및 설인신경 영역의 감각저하, 미주신경 영역의 운동 저하, 이개 후부 통증, 청력저하나 현훈과 같은 다발성 뇌신경 병증으로 나타난다.3,4)
저자들은 급성 일측성 안면 마비로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하여 안면마비가 호전되어 가는 중, 발병 21일째 동측 전정신경으로 신경염이 이환된 증례를 치험하여 문헌 고찰과 함께 보고하고자 한다.
증 례
33세 여자 환자가 좌측 안면부 움직임 저하를 주소로 외래를 방문하였다. 환자는 내원 5일전 좌측 이개 후부의 통증을 느꼈고, 내원 당일 동측의 입꼬리 처짐을 인지하였다. 안면 마비 외에 어지럼이나 청력저하는 호소하지 않았다. 안면부 움직임에 대한 신체검진에서 무표정 상태에서 좌측 안면부의 비대칭이 관찰되었고, 좌측의 눈썹을 올릴 수 없었으며, 좌측 눈을 힘주어 감아도 완전히 감기지 않았다. 마비된 측의 입꼬리 주변 근육도 잘 움직이지 않아 House-Brackmann Grade V의 마비로 평가하였다. 이개와 외이도 주변의 발적이나 수포는 관찰되지 않았다. 측두골 자기 공명 영상 검사에서 해부학적 이상이나 종양은 관찰되지 않았고, 조영증강 후 T1 강조 영상에서 안면신경 미로분절 원위부와 고실분절 근위부에 조영증강이 관찰되었다(Fig. 1). 순음청력검사의 4분법 청력역치는 좌, 우측 각각 8 dB, 10 dB였으며, 어음명료도는 양측 모두 100%였다. Stapedial reflex 검사에서는 정상인 우측에 비해 좌측의 Acoustic reflex가 모두 소실되어 있었다.
환자는 좌측 벨 마비 진단 하에 경구로 prednisolone(Solondo®, Yuhan, Seoul, Korea; 60 mg/day)을 투약하여 10일간 사용 후 5일동안 감량하였고, 항바이러스제는 사용하지 않았다. 내원 당시 호소하였던 이개 후부 통증은 입원 후 점차 소실되었다. 입원 1주 후 퇴원하였고, 퇴원 시 안면 마비 정도는 초진 시와 동일하였다. 발병 7일째, 12일째 안면신경전도검사를 시행하였으며, 변성률이 각각 평균 28.7%, 62.2%로 나타났다(Fig. 2).
발병 3주 째 외래에서 관찰하였을 때, 무표정 상태에서 안면의 모습이 대칭적이었고, 힘을 주어 감으면 좌안이 감길 정도여서 House-Brackmann Grade III로 평가하였다. 그런데 환자가 내원 당일부터 새롭게 회전성 어지럼을 호소하였다. 증상은 수 시간에 걸쳐 지속되었으며, 청력저하, 이명, 이충만감은 동반되지 않았다. 신체검진에서 우측 수평성 자발안진이 있었고, 좌측으로 두부 충동검사를 할 때 교정성 단속운동이 관찰되었다. 증상 발현에 수 일의 시간차가 있었지만, 벨마비에 병발한 좌측 전정신경염을 의심하여 전정기능 검사를 시행하였다. 비디오 안진검사에서 4–5 degree/sec의 우측 수평성 자발안진이 확인되었고, 냉온 교대 온도안진 검사에서는 48%의 좌측 수평반고리관 마비가 있었으며, 전정유발 근전위(cervical vestibular evoked myogenic potential, VEMP) 검사는 정상소견을 보여 좌측의 상전정신경을 침범한 전정신경염으로 진단하였다(Fig. 3, 4 and 5).
항현훈제를 투약하며 전정재활치료를 시행하였고, 3일 후 어지럼 증상 및 안진, 교정성 단속운동은 호전되었다(Fig. 6). 발병 3개월째 좌측 입꼬리근육의 운동 시 약간의 비대칭 소견(House-Brackmann Grade II)만 남고, 나머지 증상은 모두 호전되었다. 현재 발병 4개월째 증상의 재발 없이 추적관찰 중에 있다.
고 찰
안면신경마비는 갑자기 혹은 서서히 일측의 안면근육이 마비되는 질환이다. 가장 흔한 원인은 벨 마비(Bell’s palsy; acute idiopathic peripheral facial palsy)로 약 51% 정도를 차지하며, 그 다음으로 두부외상(head trauma)(22%), 이성 대상포진(herpes zoster oticus)(7%), 종양(tumor)(6%), 감염(infection)(4%), 선천성 질환(congenital facial palsy or birth trauma)(3.5%), 중추신경계 병변(1%) 등의 순으로 빈도를 보인다.1)
그 가운데 벨마비는 급성 특발성 말초성 안면마비로 면역체계 이상, 감염, 허혈이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2) 가장 가능성이 높은 원인 중 하나는 슬상 신경절(geniculate ganglion) 내에 감염된 단순포진 바이러스의 재활성화(reactivated herpes simplex type I, HSV-1)이다. 이는 안면신경 감압술 시 측두골 내 안면신경의 endoneural fluid 배양액에서 HSV-1의 존재가 밝혀지며 알려졌다.5) 내이도 내에서 해부학적 근접성을 고려할 때 바이러스 감염의 확산에 따라 인접한 뇌신경에 병변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시되며, 특히 Theil 등은 안면신경의 슬신경절로부터 전정신경의 원위부로 연결되는 문합이 있음을 보고하여 바이러스 이동의 가능성을 주장하였다.6) Arbusow 등은 바이러스의 슬신경절 감염이 문합을 통하여 전파되거나, 바이러스에 의해 감작된 T림프구에 의해 혈행성으로 전파될 수 있음을 보고하였다.7)
본 증례는 발병 5일 전 동측 이개 후부 통증이 있었던 환자가 안면마비 발생 21일 후 안면마비는 회복을 보였지만, 새로이 우측 수평성 자발안진이 나타나면서 동측의 전정신경에 염증이 이환된 경우이다. Koo 등은 이 같은 현상을 단순포진 바이러스의 재활성화와 확산으로 순차적 침범에 의한 뇌신경 병증이 발생하였을 것으로 생각하였다.2)
Duarte 등은 HSV-1 감염이 세포자멸사, 자가포식, 세포 산화 등의 방식으로 신경에 직접 손상을 주거나, 지연성으로 염증을 유발하여 다발성 경화증, 알츠하이머와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8) 이러한 원리로 안면신경에도 바이러스가 재활성화 되었다가 바이러스에 의한 직접적인 염증은 관해가 되면서 지연성으로 인접신경에 염증이 유발되어 뇌신경병증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본 환자는 발병 전, 후로 수포가 동반되지 않아 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 zoster virus) 감염의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상포진 혹은 단순포진 바이러스에 대한 혈청 항체 검사는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벨마비의 원인으로 알려진 HSV-1이 정상 집단에도 널리 분포되어 있어 환자의 체액의 HSV-1의 존재만으로 벨마비의 원인으로 가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9) 그러나 바이러스 항체 검사가 시행되었다면, 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American Academy of Otolaryngology – Head and Neck Surgery Foundation(AAO-HNSF)은 벨마비 치료에 스테로이드와 항바이러스제의 병합요법의 경우 선택사항(option)으로 권고하고 있으며, 본 증례에서는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하지 않았다.9) 벨마비와 전정신경염이 다발성으로 발생한 이전의 증례에서는 병합요법을 사용하였는데, 본 증례에서와 같이 예후는 좋았다. 안면마비와 동반된 다발성 신경 병변에서, 항바이러스제 병합요법과 스테로이드 단독요법간의 차이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으며, 이에 대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염증으로 신경의 부종이 발생하게 되면, 신경이 눌려지며 축삭전도가 차단되어 마비가 발생한다.10) 부종이 생기면 세포외액량이 증가해 자기공명영상 검사에서 강한 조영증강이 나타난다.11) 최근 보고된 연구들에 따르면 자기공명영상 검사에서 조영증강의 강도는 환자의 예후를 반영하는 명확한 지표가 되지는 못한다.12) 본 검사에서도 자기공명영상에서 안면신경에 뚜렷한 조영증강을 보였으나, 최종적으로 Grade II로 회복되어 예후는 나쁘지 않았다.
환자의 어지럼 증상이 비교적 이른 시간에 회복되고, 두부충동검사에서 교정성 단속운동이 수일만에 소실된 것은 환자의 나이가 젊고, 초기 어지럼 증상 정도가 심하지 않았으며, 전정재활치료를 조기에 시행한 점등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이러스의 측면에서 본다면, 초기 직접 감염에 의한 염증과 이후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체계의 반응에 의한 체액성 염증의 차이가 전형적인 전정신경염과 다르게 조기에 회복하는 임상 경과를 보인 이유로 추정된다.
안면신경 혹은 전정신경이 함께 이환되어 나타날 수 있는 다발성 뇌신경병증의 다른 원인으로는 종양성 병변, 뇌경색과 같은 혈관질환, 외상이나 감염, 길랑-바레 증후군, 다발성 경화증 등이 있을 수 있다. 자세한 문진 및 신체검진으로 동반된 뇌신경마비의 위치를 구체화(localization)하고, 그에 따라 자기공명영상 검사, 뇌척수액 검사를 시행하여 동반 질환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13)
본 증례에서는 초발한 벨마비는 이미 상당한 호전을 보인 상태에서 21일이라는 시간을 두고 지연성으로 전정신경염이 발생하였다. 안면마비와 전정신경염이 짧은 시간간격을 두고 동시에 발병한 경우는 국내외에 보고된 바 있으나, 인접한 신경에서 3주라는 시간차가 있었던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벨마비의 경우 진단 시에 병력청취, 신체 진찰, 내시경 검사, 영상학적 검사 등을 통하여 동반할 수 있는 다른 뇌신경병증의 여부를 확인하고, 이후 치료과정과 회복기간에도 추가적인 신경 증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두는 것이 권고된다 하겠다.